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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일상

호주 청소년 축구 클럽 - 이 경기는 월드컵이 아니다.

오늘은 정말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이다. 우리 아들이 속해 있는 클럽팀이  속해 있는 리그의 마지막 경기 이면서 현재 리그 선두인 아들팀과 승점과 승률이 똑같은 2등팀의 경기 였기 때문이다. 두 팀의 선수들과 코치들 그리고 부모들까지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주심도 인간이고 이 경기는 월드컵이 아니다"
호주에서 덜 인기있는 축구도 저 정도인데 인기스포츠인 럭비나 넷볼 같은 경우에는 부모들이나 조부모들이 어린 선수들에 빙의해서 소리 지르고 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며칠동안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했는데 경기 당일에는 아침부터 쨍하고 해가 나면서 축구 하기 좋은 날씨가 되었다.

긴장감 속에 입장한 선수들, 그리고 피크닉 나온 듯 그라운드 주변에 가져온 의자를 펼치고 경기 관전 준비를 마친 부모들 , 팔짱을 끼고 그라운드를 멍하니 바라보는 코치들을 보며 14세 축구 클럽의 마지막 경기가 이렇게 비장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 어릴때 동네 축구 또는 반 대항 축구 시합을 할때 나름대로 비장 했었던 기억이 있다.

경기는 초반부터 뜨거웠다. 거친 태클들이  난무 했고 전반 초반 모든 체력을 쏟아 부을 기세였다. 계속된 양팀의 공격들이 두터운 수비에 가로 막히자 아들팀의 발 빠른 미드필더  한명이 사이드에서 크로스를 올리는 척 하면서 빠른 발로 몰고 들어가 수비수 네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

나름 같은 팀 부모들이 모여 있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났다. 후반전 시작하자 마자 아들팀이 다시 한 골을 넣어 2대0 이 되자 상대팀 부모들이 더욱더 가열차게 소리를 지르며 선수들을 응원하였다. 상대팀 선수들은 자기 부모들 목소리 데시벨에 비례하여 거칠어 지고 있었다. 몇 번의 백태클과 위험하게 넘어지는 우리 팀 선수들 그리고 반칙을 부르지 않는 심판. 이번에는 우리팀 부모들이 약간 들썩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터진 상대팀의 추격골,  2대1이 되었다.

2대1은 상당히 재미있는 스코어다. 추격하는 입장에서는 조금만 더 하면 이길 수 있을 듯 보이고 쫓기는 입장에서는 긴장 하기 마련이다. 상대팀 부모들도 이를 아는지 더욱 거칠게 하라고 소리를 지르며 주문 하였고 우리팀 부모들도 긴장과 함께 왜 심판은 파울을 안 부느냐고 소릴 지르기 시작했다. 경기는 그라운드 안밖에서 과열 되는 듯 보였지만 다시 재개된 경기는 중앙선에서 몇번의 패스로 우리팀에서 손 쉽게 한 골 넣고 3대1이 되었다. 응원하던 상대팀 부모, 심지어는 선수들까지 이 골이 그들의 기를 꺽어 놓았던 모양인지 더 이상 목소리를 높이는 응원도 없었고 선수들의 발놀림도 무거워졌다. 어렵게 한골 넣었는데 너무 쉽게 실점을 하고 나서 멘붕이 온 듯 보였다. 월드컵 만큼 과열되어 가던 경기가 이 한 골로 인해 다시 호주 시골 축구 클럽의 경기로 돌아 왔다. 심판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선수들과 코치들은 악수를 하고 부모들은 앉아 있던 의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축구 하기 정말 좋은 날씨다.